월 3만 원에 박사급 두뇌 부리는 시대, AI가 못 채우는 '마지막 20점'은 누가 채우나 — 한은 강좌 김상윤 교수의 인간 생존법

  

챗GPT 앞에서 자꾸 멍해지는 그 순간,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건 다 뭐였지"라는 물음에 대해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켜거나, 회사 책상에 앉아 생성형 AI와 몇 마디 나누다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몇 년을 밤새워가며 익힌 외국어 번역이나 엑셀 함수, 방대한 자료 요약이나 보고서 초안 작업을 AI가 몇 초 만에 뚝딱 끝내버리는 걸 볼 때마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공들여 쌓은 지식과 경력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곤 하죠. 그런데 이게 단순히 사무실에 편리한 도구 하나 늘어난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능'이라는 자원의 희소성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꽤 큰 분기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행 금요강좌에 나온 디지털 경제학자 김상윤 교수(경희대 경영대학원)의 강연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 "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강연은 AI 스펙 자랑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빠르게 흡수해가는 지금, 개인이 어떻게 자기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남을지, 그리고 인간과 AI의 '진짜 협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였습니다.

지능이 수돗물처럼 콸콸 나오면서 무너진 옛날 성공 공식

과거 농경 사회가 산업 사회로 넘어갈 때 기계가 대체한 건 인간의 근육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생성형 AI 혁명은 우리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굳게 믿었던 지적 사고 자체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김상윤 교수는 이 변화를 '지능의 수도꼭지화'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예전엔 물 한 모금 마시려면 우물을 깊게 파고 물지게를 져 날라야 했던 것처럼, 전문 지식을 얻으려면 명문대 간판을 따고 두꺼운 전공서를 외우고 까다로운 자격증 시험까지 통과해야 했습니다. 지식이 소수만 가질 수 있는 독점 자산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그냥 콸콸 나오듯, 한 달에 20달러, 우리 돈으로 3만 원 남짓만 내면 세계 최고 수준의 박사급 두뇌를 24시간 언제든 부릴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생명과학계가 50년 넘게 못 풀던 단백질 3차원 구조 예측을 알파폴드가 순식간에 풀어버리고, 거대언어모델(LLM)이 미국 변호사 시험이나 의사 면허 시험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는 걸 보면, 지식 독점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쌓은 전문지식으로 평생 안정된 직장 다닌다'는 그 익숙한 성공 공식이 유효기간을 다한 셈이죠.


김상윤 교수가 말한 '인간 증명의 시대', 그리고 협업의 진짜 의미

■ 57%가 몰래 쓰는 도구, 이제는 '워크차트'를 다시 그려야 할 때

맥킨지는 2030년까지 AI 에이전트가 전 세계 사무직 업무의 70%를 자동화할 거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원래 5시간 36분 동안 처리하던 메일 회신, 자료 취합, 조사, 문서 초안 작업을 기계가 대신 처리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남는 2시간 24분, 우리는 그 시간에 뭘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할까요.

지금 많은 회사 사무실에서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좀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직장인 57% 이상이 챗GPT 같은 AI 도구를 업무에 이미 쓰고 있으면서도, 상사나 인사평가가 신경 쓰여서 대놓고 말은 못 하는 '몰래 쓰기'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김상윤 교수는 이런 눈치 보는 문화를 깨지 않으면 생산성이 절대 크게 뛸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옛날식 수직 조직도를 걷어내고, 업무 단계마다 사람과 AI가 각각 어떤 역할을 맡을지 분명하게 정하는 '워크차트' 중심 체계로 빨리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다들 80점을 받는 세상에서, 마지막 20점을 채우는 사람

AI가 보편화된 지금은 버튼 몇 번만 눌러도 누구나 80점짜리 기획서, 시장조사 보고서, 코드, 디자인을 뚝딱 만들 수 있습니다. 지적 결과물의 하한선이 확 올라간 건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평범함의 함정'도 함께 따라옵니다. 다들 80점을 낼 수 있는 세상에서는 80점의 값어치가 사실상 0원에 수렴하기 때문이죠. 시장이 진짜 돈을 지불하는 건 그 80점을 95점, 100점으로 끌어올리는 사람만의 통찰과 마무리 능력입니다.

여기서 김상윤 교수가 던진 핵심 화두가 '인간 증명(Proof of Humanity)'입니다. AI가 그럴싸한 답을 쏟아내는 세상에서 사람의 진짜 경쟁력은 '정답을 외우는 힘'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힘'으로 옮겨갔다는 겁니다. 데이터 속에서 시대의 맥락을 읽어내고, 기계가 놓친 사회적·윤리적 파장을 눈치채고, AI라는 거대한 엔진의 방향키를 쥐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능력. 이게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사람만의 증명서인 셈입니다.


우리는 AI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 외주화의 함정과 공존의 지혜

■ 생각까지 외주 주면 벌어지는 일

여기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AI와 함께 지적으로 성장하고 있나, 아니면 조금씩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나" 하는 질문입니다.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면서 가족 전화번호도 못 외우게 되고,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다 보니 길눈이 흐려졌던 것처럼, 생각과 추론까지 통째로 기계에 넘기는 '생각의 외주화'는 우리 뇌를 급격히 게으르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업무 현장에서는 AI가 던져준 첫 답변을 별다른 의심 없이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는 일이 흔하게 벌어집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논리를 세우고, 오류를 잡아내는 훈련을 멈추는 순간 사람은 AI를 지휘하는 주체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뱉어내는 글을 그냥 받아먹는 소비자로 전락합니다. 지능을 외주 준 데서 오는 편안함 뒤에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놓치면, 기술 발전이 오히려 의존만 키우는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 사람과 AI가 만나면 완성되는 '증강 인류'

그럼 진짜 공존과 성장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AI를 무서워해서 등 돌리는 것도, 무조건 다 맡겨버리는 것도 답은 아닙니다. 핵심은 AI를 나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 한계를 넘게 도와주는 '지적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매김시키는 데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글을 잘 쓰고 복잡한 수식을 순식간에 풀어도, 기계는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목적'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 불확실한 상황에서 직관을 믿고 책임지는 결단력, "세상을 더 낫게 바꾸고 싶다"는 의지 — 이런 건 오직 사람의 마음에서만 나옵니다. 이런 인간 고유의 목적의식 위에 AI의 압도적인 속도와 처리 능력을 얹을 때,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증강 인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성장이란 기계를 잘 다루는 동시에, 사람만의 사유하는 힘을 더 단단하게 벼려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AI를 부려먹는 사람이 되기 위한 꿀팁

 - AI 답변, 일단 의심부터 하기: AI가 준 답을 그대로 보고서나 메일에 옮기지 말고, 숫자·고유명사·인과관계는 최소 두 곳 이상의 믿을 만한 1차 자료로 대조해보는 습관을 들이세요.

- 단답형 지시 대신 캐묻는 질문 던지기:  "요약해줘" 대신 "이 기획안의 논리적 허점 세 가지를 반대편 입장에서 비판해줘", "이 사안을 경제학적 관점과 윤리학적 관점에서 비교해줘" 처럼 깊이 파고드는 질문을 훈련해보세요.

- 나만의 현장 경험과 감을 기록해두기: 인터넷에 이미 올라온 지식은 AI가 제일 먼저 학습해버립니다. 현장에서 직접 겪은 실패담, 고객과의 대화에서 느낀 날것의 감정, 조직 안의 미묘한 역학 같은 건 나만의 언어로 꾸준히 적어두는 게 진짜 차별점이 됩니다.

- 내 업무를 단계별로 쪼개보기: 기획, 자료조사, 초안 작성, 교정, 최종 판단 등으로 내 일을 잘게 나눠보고, 어느 단계는 AI에게 맡기고 어느 단계는 내가 직접 판단할지 역할을 명확히 정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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